인터넷의 보급이 확대되던 시절 인터넷 카페들과 게시판들은 익명을 가진 많은이들의 해방구였다. 오프라인에서는 접하지 못하는 신선한 정보들과 제도권 언론에서는 다루지 못하는 논조의 글들이 많이 올라왔고 그 내용에 열광한 익명들이 많이 있었다.
특히 게시물 하단에 달린 댓글 기능을 통해 글쓴이와의, 혹은 글을 본 이들과의 의견 교류는 당시로는 획기적인 경험이었다. 간혹 본 게시물보다 댓글이 더 심도 있거나 재미있는 경우가 많았고, 스타 댓글러들도 생기곤 했다.
그러나 역기능도 있게 마련, 언제부턴가 악플러들이 주목받게 되었다. 그들은 게시물 내용에 대한 악플로 시작하였겠지만 나중에는 본 게시물과는 상관 없는 악플, 타 댓글러들에 대한 악플, 심지어 악플러들끼리의 악플 배틀이 벌어지고는 했다. 그 악플의 향연을 찾아다니며 관람하는 익명들도 많이 생겼고, 모 유명 악플러가 지나간 게시물은 성지가 되곤 했다.
그러다 사단이 났다. 지금도 회자되는 D 사이트를 애용하던 유명 악플러들간의 현피가 예고 된 것이다. 많은 익명들의 주목을 받았고 내게 싸움이 커지는 것을 중재해달라는 요청이 있었다. 당시 나도 그 사이트를 애용하던 한명의 익명이었고, 중도적 입장이었기에 다른 익명들로부터 부탁을 받은것이다. 그들은 온라인에서 현란한 단어와 창조적 문장을 구사하는 무시무시한 악플러들이었으므로 현실에서 만난다면 일이 엄청 커질것으로 우려되어 현피 현장에 가게 되었다.
현장에 가보니 당사자들이 나오긴 나왔는데, 그들은 상당히 낯을 가리고 말도 버벅거리는 하얀 얼굴의 젊은이들이었다. 익명들에게 떠밀려 나오긴 했는데 왜 나와서 싸워야 되는지 파악을 못하고 있는중이었다.
"자네들은 뇌가 손가락에 달렸나?"
온라인에서 속도감 있게 내뱉던 그들의 악플 배틀과는 사뭇 다른 서먹한 현장을 빗대어 한마디 했더니, 모였던 익명들이 한바탕 웃엇고 그 날은 그렇게 지나갔다. 키보드 밖의 그들은 아직 세상이 낯선 어린 친구들이었던 것이다. 손가락으로 얘기하는것에 익숙한..
10여년이 흐른 지금도 키보드 위에서만 세상을 바라보고 손가락으로만 생각을 하는듯한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선배들이 짜놓은 프레임 안에서 현상을 바라보고, 짜놓은 문서의 틀 안에서만 그 현상을 논한다.
최소한 그 안에서 논리의 허점은 없다.
완벽한 계획이 나온다.
거기까지인듯 하다.
컴퓨터를 타자기로만 쓰는것은 아닌지...
1류 아이디어에 대한 3류의 실행능력보다는, 3류의 아이디어라도 1류의 실행능력이 뒤따르는 것을 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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