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로봇이 인체 안에 주입되어 암세포를 제거하고 막힌 혈관을 뚫어주는 기술을 만들면 어떨까?” 라는 상상에서 출발한 책 '이너 스페이스'.사진=저자 페이스북

이 책의 저자는 ‘페이스북’에서 알게 되었다. 나의 페이스북 친구들과 그가 다양한 인연으로 엮여 있어서 자연스럽게 나와 페이스북 친구가 된 것이다. 처음에 나는 그를 미국 어느 대학교에 재직하는 예술가나 인문학 교수로 알았었다.

내가 이렇게 생각한 데는 그가 페이스북에 올리는 사진과 글 때문이었다. 그의 집 정원이나 학교 혹은 길가에서 만나는 꽃들에 마치 연인을 대하듯 감정이입 하는 모습이 그랬고, 그의 일상을 적은 감성적인 글들이 그랬다.

나는 그가 정확히 무슨 일을 하는지 궁금했는데 마침 책을 냈다고 해서 반가운 마음에 읽었다. ‘김민준의 이너 스페이스’가 그 책이다. 그런데 그는 공학자였다. 그것도 세계적인 로봇공학자.

김민준은 현재 미국 텍사스주 달라스에 있는 서던메소디스트 대학교(SMU, Southern Methodist University) 석좌교수이다. 이 책은 그의 연구 분야인 나노로봇과 세계적 로봇공학자로 자리매김한 인간 김민준에 관한 이야기가 담겼다.

'이너 스페이스(Inner Space)'라는 책 제목은 1987년 미국에서 제작한 같은 제목의 영화를 떠오르게 한다. 초소형 잠수정을 타고 사람 몸속을 탐험하는 영화 말이다. 김민준 교수는 이 영화를 보고 “작은 로봇이 인체 안에 주입되어 암세포를 제거하고 막힌 혈관을 뚫어주는 기술을 만들면 어떨까?” 하는 상상을 한다.

그리고 나노로봇 연구에 적용하고 한 걸음 한 걸음 새로운 길을 개척해 나간다. 이 책은 단계마다 품었던 김민준 교수의 고민과 그 고민을 풀기 위한 무수한 실험들, 그 고민과 실험들을 함께한 스승과 동료이기도 한 제자들의 이야기가 담겼다.

'김민준의 이너스페이스'. 동아시아 펴냄.

 

나노로봇이란?

나노로봇은 주변 환경을 스스로 인지해 방향과 속도를 조절하는 수십~수백 나노미터(1nm는 10억분의 1m) 크기의 극초소형 로봇이다. 미생물인 박테리아의 수십 분의 1 크기로, 혈액과 같은 인간의 체액 안에서 자기장을 이용한 자체 추진력으로 헤엄쳐 움직인다. (32쪽)

난 이렇게 극히 작은 로봇을 어떻게 만들까가 궁금했다. 하지만 로봇을 사람이나 동물을 본떠 금속으로 만든 모습으로 일반화시키고 각인한 나의 오해였다. “일반적인 로봇과 달리 나노로봇은 무기물뿐 아니라 생체재료들의 생화학적 조작을 통해 만들어진다”는 거다. 예를 들어 “박테리아를 모방해 만든 인공 박테리아 나노로봇은 박테리아처럼 세포체와 편모로” 이루어져 있다고.

김민준 교수는 인체의 체액 흐름에서도 힘차게 헤엄치는 박테리아의 능력을 모방해 1세대‘ 박테리아 나노로봇’ 개발에 성공한다. 그리고 유체 환경의 변화를 자동으로 인식해 가장 최적화된 형태로 변신하는 로봇을 개발한다. 트랜스포머 나노로봇인 ‘2세대 박테리아 나노로봇’이다. 영화 ‘트랜스포머’ 시리즈에 나오는 상황에 맞춰 변신하는 로봇을 상상하면 된다.

하지만 ‘2세대 박테리아 나노로봇’이 세포벽이라는 장애물을 뚫지 못해 버벅거리자, 3차원 나선형 구조로 회전하는 기능까지 추가 탑재한 ‘3세대 박테리아 나노로봇’까지 개발한다. 현재 김민준 교수는 복잡한 인체 내부를 온전히 제어하기 위해 나노로봇에 인공지능의 딥러닝 기능을 탑재하는 연구를 진행 중이다.

1987년 개봉한 영화 '이너 스페이스(Inner Space)'. 초소형 잠수정을 타고 사람 몸을 탐험하는 영화로 김교수에게 영감을 준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네이버영화

중요한 것은 인간 그리고 인간관계였다

학계에서 스승과 제자의 관계는 학맥(學脈)에 의해 죽어서도 이어지는 맺음이다. 스승이 나무의 뿌리 같은 존재라면 제자는 세상을 향해 뻗어가는 가지다. 가지에 잎이 달리고 꽃이 필 수 있도록 뿌리는 끊임없이 물과 영양분을 공급해주어야 한다. 가지는 뿌리로부터 받은 물과 영양분으로 더 튼튼하게 뻗어나가야 하고 열심히 꽃을 피어야 한다. (290쪽)

김민준 교수가 인간관계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잘 드러난 구절이다. 그는 좋은 사람을 만나게 되면 그 사람 덕분에 또 좋은 사람을 또 만나게 된다는 경험을 한다. 좋은 스승이 좋은 스승을 만나게 하고 좋은 제자가 좋은 제자를 끌어들이는 그의 연구실 모습이 이 책에 여러 번 언급된다.

인간관계를 중요시하는 김민준 교수에게 학문 계보는 상당히 중요하다. 그에게 학문적 조상은 ‘코페르니쿠스’에까지 올라간다. 달랑 이 문장만 본 사람이라면 농담으로 생각하겠지만 과학 분야의 성취는 혼자만의 능력으로는 힘들다는 걸 설명하고 있다. 과학과 기술의 발전에 있어서 선배 혹은 조상 연구자들의 결과를 이어받아 발전시켜나가는 일관성과 확장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거다.

학문의 계보를 소중히 생각하는 김민준 교수는 그에게 많은 깨달음을 준 여러 스승을 책에서 소개한다. 그의 현재 위치가 혼자만의 힘으로 올랐다는 게 아니라는 것. 또한, 그와 함께한 여러 제자도 소개한다. 그의 현재 성취가 혼자만의 성취가 아니라는 것이다.

저자 美 서던메소디스트대 김민준 석좌교수.사진=김민준 페이스북

김민준 교수가 한국에 있었다면?

혹자는 이런 인재가 왜 한국으로 오지 않았을까 의문을 가질 수도 있다. 사실 김민준 교수도 처음에는 한국에서 교수 생활을 하고 싶어 했다. 하지만 여러 가지로 그와 한국은 맞지 않았다.

이런 생각을 해봤다. 만약 그가 한국으로 올 수 있었다면 지금과 같은 성과를 낼 수 있었을까? 절대 그렇게 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이렇게 확신하는 이유는 이 책에 언급된 김민준 교수의 경험담이 아니더라도 잘 알 수 있다.

그들만의 리그인 대학교의 폐쇄성도 문제지만 ‘관료 공화국’인 우리나라에서는 과학자가 제대로 연구할 수 있는 여건이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특히나 국책연구 프로젝트는 (규모와 수준에 상관없이) 공무원이 만든 규격화된 틀 안에서 관리되어야 하고 정해진 양식의 보고서도 남겨야 한다. 향후 감사에 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김민준 교수의 책은 혁신은 짜 맞춘 틀 안에 가둘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새삼 깨닫게 한다. 과학과 기술의 발전은 과학적, 공학적, 수학적 사고뿐 아니라 인문학과 예술적 소양이 함께 있어야 촉발된다는 것도. 그런 융합적 사고(思考)가 세계적 나노로봇공학자 김민준 교수를 있게 했다고도.


이 글은 '오피니언뉴스'에 게재된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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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을 책이 떨어지면 난 서점 나들이를 한다. 제일 먼저 베스트셀러에 오른 책 중에서 읽을만한 책이 있는지 살펴본다. 베스트셀러에 새로 오른 책이 없다면 분야별 매대로 눈을 돌린다. 새로 나온 책들이 많은 코너에 가면 꼭 처음 가본 곳을 여행하는 것처럼 설렌다.

처음 만나는 책에서 제일 먼저 보는 것은 외모다. 제목과 부제, 띠지와 뒤표지는 물론 디자인까지 싹 훑어본다. 마음에 들면 그 책의 출신을 본다. 어느 출판사에서 냈는지 그 출판사에서 낸 다른 책들은 어떤 게 있는지 살펴본다. 유명하지 않은 출판사라도 내가 재미있게 읽은 책을 냈던 출판사라면 읽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책을 선택하게 하는 학습효과일까.

올해 초에 베스트셀러에 오른 책이 있다. 오랫동안 그 자리를 차지한 책들이 많아서 새로 올라온 그 책은 유독 눈에 띄었다. 하지만 ‘배움의 발견’이라는 제목이 나를 선입견에 빠지게 했다. 연초니까 학부모들을 겨냥한 책이겠군 하는. 그 책을 낸 곳이 큰 출판사니까 마케팅에 힘 좀 쏟았군 하는 생각도 들었다. 여러 비판적인 마음으로 매대에서 책장을 넘겼는데 선 채로 한참을 읽었다.

‘배움의 발견 (Educated)’는 '타라 웨스트오버’의 첫 저술이자, 회고록이다. 미국 아이다호주 벅스피크의 유년 시절부터 케임브리지에서 역사학으로 박사 학위를 얻기까지 남다른 배움의 여정을 다룬다.

2018년 초에 나온 이 책은 버락 오바마 미국 전 대통령, 빌 게이츠, 오프라 윈프리 등 유명 인사들의 찬사 속에 2019년 말까지 미국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랐다고. 회고록의 폭발적인 인기 속에 타라는 2019년 ‘타임’이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에 뽑혔다.

'배움의 발견'. 열린책들 펴냄.

 

공교육 거부한 아버지로 인해 16년간 학교를 다니지 못해

‘타라 웨스트오버’는 1986년 미국 아이다호에서 7남매 중 막내딸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세상의 종말이 임박했다고 믿는 모르몬교 근본주의자였고, 공교육에 대한 불신 때문에 자녀들을 학교에 보내지 않았다. 타라는 아버지 말에 따라 복숭아 병조림을 만들고, 밤에는 ‘산속 피신용’ 가방을 끌어안고 잠을 청했다. 산파이자 동종 요법 치유사인 어머니를 도와 약초를 끓이며 여름을 보냈고, 겨울에는 아버지의 폐철 처리장에서 폐철을 모으고 자르는 일을 했다.

타라의 가족은 주류 사회로부터 너무나 고립된 상태로 살았고, 이 때문에 자녀들은 제대로 된 교육의 기회도, 가족 간의 은밀한 학대에도 어떤 도움을 받을 수 없었다. 심지어 현대 의학을 믿지 못하는 아버지 때문에 의사나 간호사를 만나 본 적도 없었다. 피가 철철 흐르는 상처, 심각한 뇌진탕, 심지어 폭발로 인한 화상도 모두 엄마가 만든 약초를 써서 집에서 치료했다.

타라가 처음 배움에 발을 들여놓은 것은 열일곱 살이었다. 대학에 들어간 셋째 오빠가 집에 돌아와서 산 너머 세상에 관한 이야기를 해주자 타라는 새로운 인생을 향해 발걸음을 떼겠다고 결심한다. 열여섯 살이던 타라는 아버지의 눈을 피해 대입자격시험(ACT)에 필요한 과목들을 독학으로 공부했고, 모르몬교 재단에서 운영하는 브리검 영 대학에 합격한다.

타라의 대학 생활은 녹록하지 않았다. 그녀는 기초 교육 과정을 모두 건너뛴 채로 대학에 입학했기 때문에 ‘레미제라블’에서 ‘나폴레옹과 장발장 중 누가 역사적 인물이고 누가 허구의 인물인지’ 구분하지 못할 만큼 기초 지식이 부족했다. 외딴 산골에서 부모의 일을 돕거나 주말에 교회에 가는 것 말고는 거의 사회생활 경험이 없었던 타라는 친구, 지인, 이성을 대하는 법, 커피를 마시는 방법까지 모두 다시 배워야 했다.

'이방인'들을 만나면서 자신이 진짜 '이방인'임을 깨닫다

새롭게 경험한 대학은 아버지의 입을 통해 들은 세상과 너무나 달랐다. 성경과 모르몬 경전 이외에는 다른 책을 제대로 읽어 본 적이 없던 타라에게 대학에서 배우는 모든 것들이 충격으로 다가왔다. 홀로코스트라는 단어도 처음 알았고, 흑인 민권 운동도 처음 배운다. 페미니즘에 대한 의미도.

타라는 위대한 선지자의 말이나 역사학자가 제시하는 해석에 대해서도 의문을 품을 수 있고, 자기 생각을 덧붙일 수 있다는 생각. 그전까지는 상상도 못 했던 일을 처음으로 한다.

아버지는 세상 사람들을 ‘이방인’이라고 불렀지만, 타라는 점점 자신의 가족이야말로 진짜 ‘이방인’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타라는 아버지의 왜곡된 신념 때문에 자신과 가족들이 얼마나 큰 희생을 치러 왔는지 깨닫고, 깊은 분노와 배신감을 느낀다. 타라는 ‘아버지가 기른’ 그 소녀와 배움을 통해 새롭게 만들어진 지금의 ‘나’가 공존할 수 없음을 깨닫는다.

타라는 강의실에서 교수가 칠판에 쓴 물음을 떠올린다. ‘누가 역사를 쓰는가?’ 그녀는 ‘바로 나’라고 생각한다.

배움을 향한 열정은 타라에게 새로운 문을 열어 주었고, 그녀는 바다와 대륙을 건너 케임브리지와 하버드 대학교에 가서 공부하기에 이르렀다. 박사 학위도 받았다. 하지만 가족과 끊어진 삶은 그녀에게 큰 고통으로 다가온다. 그녀는 자신이 너무 멀리 와버린 것은 아닌지, 아직 집으로 돌아갈 길이 있는지 의구심을 품기 시작한다. 하지만 타라는 새로운 자아가 내린 자기의 결정을 믿는다.

(16세 이전의) 그 소녀는 거울 속에 머물렀다. 그 이후에 내가 내린 결정들은 그 소녀는 내리지 않을 결정들이었다. 그것들은 변화한 사람, 새로운 자아가 내린 결정들이었다. 이 자아는 여러 이름으로 불릴 수 있을 것이다. 변신, 탈바꿈, 허위, 배신. 나는 그것을 교육이라 부른다.

타라 웨스트오버 <배움의 발견>, 507쪽

한 여성이 자신의 자아를 찾아가는 투쟁의 이야기

이 책은 시골에서 열여섯까지 학교 문턱도 밟아보지 않았던 소녀가 명문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입지전적 경험을 담은 회고록만은 아니다. 이 책은 한 여성이 자신의 자아를 찾아가는 투쟁의 이야기이다.

또한, 가장 가까웠던 사람들과의 관계를 끊는 슬픔에 관한 이야기이며, 가족과의 연결 고리를 잃지 않고 세상 속에서 자기 자리를 찾으려는 노력을 담은 이야기이다. 타라에게 배움은 단순히 좋은 대학에서 학위를 따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더 깊고 더 넓게 보는 눈을 뜨고 자신을 재발견하는 일이었다.

‘배움의 발견’은 500쪽이 넘는 책이다. 그런데 집중해서 읽게 만드는 매력이 있는 책이다. 만약 회고록이라는 사전 정보가 없었다면 소설이었다고 해도 믿을만한 책이었다. 그만큼 저자가 살아온 배경과 겪은 일들이 너무나 허구 같았다. 게다가 저자는 1986년생이다. 책에 나온 전근대 같은 배경이 불과 30여 년 전 이야기라는 것이다.

그래서 ‘타라 웨스트오버’의 이야기가 놀라우면서도 성찰을 준다. 배움이 무엇인지, 배움을 통해 우리는 무엇을 얻을 수 있는지. 바로 배움을 통해 우리는 자신의 삶을 보는 새로운 눈을 얻을 수 있고, 자신의 삶을 변화시킬 의지를 얻는다는 사실을 평범한 사실을 설득력 있게 들려준다.

강대호 북칼럼니스트dh9219@gmail.com


오피니언 뉴스에 게재한 칼럼입니다.

출처 : 오피니언뉴스(http://www.opinio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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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생이 온다'.웨일북 펴냄

 

서점에 가면 세대(世代)를 소재로 나온 책들이 많이 보인다. 거의 청년 세대를 분석하고 그들을 이해하기 쉽게 도와준다고 주장하는 책들이다. 그 책들의 주인공인 20대는 물론 그들의 선배나 상사인 30대와 40대들도 등장해서 독자들의 이해를 돕는다.

이렇듯 세대를 논하는 책들은 나이를 기준으로 10년 단위로 나누거나 특정 시기에 태어난 것으로 구분해서 그 안에 속한 사람들을 한 개의 집합으로 다룬다. 하지만 나는 세상을 단순하게 나이에 따라 구분되는 세대의 연속으로 볼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나의 의문은 이어진다.

비슷한 시기에 태어나서 같은 제도 안에서 교육받고 유사한 문화적 경험을 공유한다고 해서 그들이 같은 성향을 보일까. 그렇게 분류한다면 적어도 몇백만 명의 사람들이 같은 범주 안에 속할 텐데 그들의 특성을 단 몇 개의 문장으로 정의(定意)할 수 있을까. 특히 그런 책들에서 20대는 어떻고 30대는 어떻다는 담론을 펼치는데 그 특성이 과연 그 세대 전체를 아우르고 있는 걸까.

같은 세대에서도 소수 엘리트와 그렇지 못한 다수 대중으로 나뉘기 마련인데 세대 담론에서는 엘리트 수준과 대중 수준으로 구분해서 다루기 어렵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세대 담론은 베이비붐 세대, 386 세대, 밀레니얼 세대 등 특정 시기에 태어난 것으로 세대를 구분하고 그 세대 전체가 아닌 일부가 드러내는 특성들을 일반화해서 다룰 뿐이다.

그런데도 세대론이 이 시대에 눈과 귀를 잡아끄는 것은 어떤 이유일까. 세대 담론을 연구하는 김선기는 ‘청년팔이사회’에서 ‘현실적 쓸모’에 주목한다. 사회 현상을 세대 차이로 해석해야 하는 현실적인 쓸모가 필요했다는 것이다. 김선기는 세대론이 “세대를 중심으로 사람들을 효과적으로 (소비자나 유권자로) 구분하고 동원할 수 있다는 믿음의 총체”라고 설명한다.

그런 세대 담론에서 가장 성공한 책을 꼽자면 ‘90년생이 온다’일 것이다. 현재 대형 서점에서도 가장 넓은 매대를 차지하고 있는 책이고, 대통령이 청와대 직원들에게 선물했다고 마케팅 하는 책이다. 그래서 (2018년 11월 16일에 출간된 이 책은) 지난 1년간 가장 많이 팔린 책 중 한 권이다.

저자 임홍택은 CJ 그룹에서 신입사원 교육과 마케팅업무를 한 80년대 생이다. 그는 90년대 생 신입사원과 소비자들을 마주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브런치에 ‘9급 공무원 세대’를 연재했다. 이 책은 그 글들을 기반으로 출판됐다.

‘90년생이 온다’에서 묘사한 20대는 “9급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세대다. 최종 합격률이 2%도 안 되는 공무원 시험에 수십만 명이 지원하는 현실을 보여준다. 불합격해도 다음 해에 또 지원하고 새로운 수험생도 추가되어 경쟁률이 점점 높아지는 악순환의 현실을 그린다.

90년대생이 직원이 되었을 때.사진=웨일북 페이스북

이런 모습을 지켜보는 기성세대도 언급한다. 저자는 기성세대가 공무원 시험으로 몰리는 20대를 꿈이 없는 나약한 세대로 여긴다며 비판한다. 나아가 저자는 한국이 점점 젊은 세대에게 불평등하게 흘러간다고, 그런 이 시대가 20대들을 공무원 시험으로 내몰았다고 항변한다.

저자는 그러한 20대들의 특성을 ‘90년생이 온다’에 담았다(고 주장한다.) 그는 지난 몇 년간 청년을 ‘시대의 희생자’라고 규정짓던 세대 담론의 연장선에서 90년생들을 바라본다. 이 책은 세 부분으로 되어있다.

첫 부분은 90년대 생의 삶을 포괄적으로 보여준다. 이를 위해 그들이 처한 지금 세상의 부조리, 20대 관점에서 본 부조리한 한국의 상황을 나열한다. 그리고 저자 관점에서 본 20대들의 대표적 특징을 이야기한다. 그들은 줄임말로 대표되는 간단함을 좋아하고, 병맛으로 대표되는 재미를 추구하고, 정직함을 최고의 가치로 생각한다고 설명한다. 마케팅적으로 시사점이 있다고 강조한다.

두 번째 부분은 20대들이 직원이 되었을 때의 특성을 보여준다. 이 부분에서는 20대들이 선배 세대와는 어떻게 다른지를 저자가 경험한 다양한 사례로 들려준다. 20대들이 생각하는 공적인 일과 사적인 일의 구분, 회사의 제 규정과 조직의 선배를 대하는 자세를 이야기한다. 조직과 선배가 달라져야 한다고 조언한다.

마지막 부분은 20대들이 소비자가 되었을 때의 특성을 알려준다. 저자는 이들이 선배 세대들과 다른 소비 특성을 나열한다. 책 첫 부분에서 설명한 20대들의 간단함을 좋아하는 특성이 간편식 등 간편한 서비스를 좋아하고, 정직함을 추구하는 특성이 남양유업 등 부도덕한 기업의 제품을 보이콧 하는 현상을 나열한다. 저자는 20대가 산업 트렌드를 이끄는 주체라고 크게 외친다.

기성세대가 젊은 세대의 창조적 가치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포용력 있고 열린 자세로 그들과 적극적으로 만날 때에만 젊은 세대에 대한 모든 편향된 평가와 논의들이 사라질 것이다. (중략) 세대론은 그렇게 세대 간의 포용력 있는 공감대를 만드는 데 쓰여야 한다.

임홍택 <90년생이 온다>, 66쪽

이렇듯 이 책이 주장하는 건 젊은 세대를 바로 이해하고 받아들이자는 것이다. 지금 20대뿐 아니라 앞으로 20대가 될 세대들도 포함해야 한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또한 이제는 90년대생뿐 아니라 2000년대 출생자들에 대한 이해가 필요한 시점이기도 하다. (중략) 오로지 한 가지 자명한 것은 나와 같은 80년대생뿐 아니라 지금의 90년대생들도 낯선 그들에게 신세대의 타이틀을 내어주고 그들을 이해하기 위해 애써야 한다는 것이다.

임홍택 <90년생이 온다>, 330쪽

 

어쩌면 어떤 한 세대에게 바로 아래 세대는 이해하기 어려운 면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 불편할 것이다. 그 어떤 한 세대 또한 바로 윗세대에게 이해하기 어려운 존재였던 때가 있었을 텐데. 당시 그들도 불편한 존재였을 것이다.

 

90년대생도 언젠가는 기성세대가 된다.사진=웨일북 페이스북

 

우리는 학교에서나 사회에서 서로 어울려 잘 지내기 위해서는 한쪽의 노력이 아니라 양쪽이 함께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배워왔다. ‘90년생이 온다’에서도 포용력 있는 공감대를 여러 곳에서 강조한다. 하지만 책의 결론은 윗세대에게 이해와 양보를 요구하는 것으로 향했다.

아랫세대가 불평등한 시대에 태어난 안타까운 세대이니 상대적으로 혜택을 많이 받은 윗세대가 양보해야 한다는 논리다. 한국적 (혹은 유교적) 위계질서의 문제도 저자의 논리로 등장한다.

사실 이런 논리는 최근 갑자기 툭 튀어나온 게 아니다. 한 세대와 다른 세대를 상대편으로 놓고 한쪽이 얻으면 다른 한쪽이 잃는 것 같은 경쟁 구도 혹은 세대 갈등은 정치권을 중심으로 예전부터 있었다.

앞에서 언급한 김선기의 다른 글 ‘386세대와 86세대의 차이’에 의하면 2000년대부터 보수 진영이 20~30대에게 "386세대가 젊은 세대의 기회를 점유하고 있다"는 논리를 전개했다고 한다. 세대 갈등 혹은 경쟁 구도의 세대 담론은 반대 정치 세력을 견제하기 위한 논리로 시작했다는 것이다.

요즘 세대 담론을 보면 사회 권력층은 분명 50대다. 하지만 50대 전체가 사회 권력층은 아니다. 물론 고위 공직자, 유력 정치인, 성공한 경제인도 있지만 내일보다는 오늘이 걱정인 직장인, 상공인, 자영업자들이 다수를 이루고 있다. 2018년 통계청 ‘인구총조사’ 자료에 의하면 50대 인구는 약 850만 명이다.

‘90년생이 온다’ 관점으로 보면 20대는 공시족이다. 하지만 20대 전체가 공시족은 아닐 것이다. 2018년 통계청 ‘인구총조사’ 자료에 의하면 20대 인구는 약 700만 명이다. 그들 한 명 한 명 모두는 다양한 꿈을 꾸며 그 꿈을 펼치기 위해서 보이는 곳, 혹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진한 땀방울을 흘리고 있을 것이다.

그들의 꿈과 땀방울을 내 진심을 담아서 응원한다. 우리 선배 세대들은 모두 같은 마음일 것이다.

강대호 북칼럼니스트dh9219@gmail.com


오피니언 뉴스에 게재한 칼럼입니다.

출처 : 오피니언뉴스(http://www.opinio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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