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4일 토요일 오후 6시 경기도 성남시에 있는 ‘성남 아트센터 콘서트홀’에서 ‘서울시민교향악단(Seoul Civic Symphony Orchestra)’의 공연이 있었다. 스물한 번째인 이번 정기공연은 “With”를 표제로 한 특별한 의미를 담았다. ‘온누리 사랑 챔버‘에서 활동하는 두 젊은 연주자를 협연자로 초대하였는데 모두 발달장애가 있는 음악 전공자이다.
친근한 레퍼토리의 연주회
이번 공연에서 들려줄 곡은 1부에서,
- 베토벤 “레오노레 서곡 3번”
- 하이든 “첼로 협주곡 제1번, 1악장”
- 생상스 “바이올린 협주곡 제3번, 1악장”
2부에서는,
- 멘델스존 “교향곡 제4번” <이탈리아>
등 모두 4곡이었다.
예전에 아마추어 오케스트라 공연을 본 후로 선입감이 생겼다. 악기 간 소리의 불균형과 불협화음을 들려줄 것이라는. 그런데 첫 곡인 <레오노레 서곡>의 도입부가 시작되었을 때 그 선입감을 가졌던 귀가 무안할 정도로 안정된 화음과 각 악기군의 균형 있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다만 ’포르테(forte)’ 부분의 자신감 있는 연주와는 달리 ‘피아노(piano)’ 부분은 상대적으로 소심하게 연주하는 느낌을 받았다. 이는 첫 곡이라는 부담과 긴장에서 오는 흔들림인 듯 뒷부분으로 갈수록 여린 부분에서도 단호하게 연주하는 자신감을 들려주었다.
공연 타이틀이기도 한 “WITH”를 담은 협연
두 협연자의 연주가 이어졌다. 첼로의 ‘김희웅’이 연주하는 <하이든 첼로 협주곡 제1번, 1악장>과 바이올린의 ‘이예림’이 연주하는 <생상스 바이올린 협주곡 제3번, 1악장>이다.
먼저 김희웅이 연주하는 첼로 협주곡 순서다. 마침 맨 앞에 앉게 되어 그가 무대로 나오고, 객석에 인사하고, 자리에 앉고, 악기 위치를 조정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고. 오케스트라의 서주가 나오자 첼로 솔로가 나오기 전까지의 그가 내는 표정을 볼 수 있었다. 긴장은 없어 보였고 오케스트라의 연주에 몰두하며 집중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오히려 내가 첼로 솔로로 시작하는 부분을 긴장하며 기다렸지만 우려였다. 잘 시작했고 마지막까지 훌륭하게 끌고 갔다. 바로크 음악 특유의 따뜻한 분위기가 잘 나타나는 이 곡을 오케스트라와 첼로의 따뜻한 대화로 승화시켰고. 지휘자와 오케스트라 그리고 협연자의 들리지 않는 대화를 듣는듯한 연주였다.
두 번째 협연자는 바이올린의 이예림이다. 자폐성 장애를 겪고 있는 그녀는 시각장애도 갖고 있다고 했다. 지휘자의 인도로 무대에 나와 선 모습이 경직되어 보였지만 이내 집중하는 표정으로 바이올린을 턱과 어깨에 괴고 지휘자의 사인을 기다렸다. ‘생상스’의 ‘바이올린 협주곡 3번’은 1악장 시작 부분의 바이올린 솔로가 유명한 곡이다. 나는 역시 긴장하며 그 첫 부분을 기다렸는데 ‘와우!’라는 소리를 삼키고 말았다. 유려한 악기의 톤과 자신감 있는 카덴차 속주를 들어보니 준비된 협연자라는 느낌을 받았다. 오케스트라의 소리와 지휘자의 사인에 집중하며 자신의 연주를 이어가는 모습이 당당해 보였다. 오케스트라에 전혀 묻히지 않는 연주였다.
두 협연자 모두 이 무대에 설 수 있는 자격을 갖춘듯했고 둘은 그 자격을 끝없는 노력으로 증명했다. 커튼콜에서 받은 박수와 두 연주자가 보여준 그 뿌듯한 표정은 받고 누릴만한 자격 있는 훈장이었다. 나머지 2, 3악장도 연주하는 날이 오기를 기대한다.
아마추어 교향악단이 보여준 아름다움
2부의 첫 곡이자 마지막 곡은 ‘멘델스존 교향곡 제4번’, <이탈리아>였다. 공연이 후반으로 치달으며 안정감이 돋보였다. 1부 초기에 보였던 흔들림 혹은 소극적인 모습은 안 보였고 좋은 균형감의 교향악을 들려주었다. 많이 알려진 곡이라 교향악단에게는 연주하거나 연습하기에 편할 수 있겠으나, 관객에게 유명한 곡을 실황으로 듣는다는 것은 유명악단의 베스트 음반과 비교하는 자리가 될 것이다. 모든 걸 참작해 듣더라도 균형감 있는 소리와 자신감 넘치는 연주의 <이탈리아>였다. 다만 3악장 마치고 터진 박수 때문인지 다소 급하게 시작된 4악장 초반에는 당황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으나 곧 제자리로 돌아왔다. 스물한 번째의 정기공연이라는 이력에서도 알 수 있듯이 경험을 쌓은 오케스트라의 모습이었다.
이번 연주회에서 받은 인상은 좋은 균형과 안정감 있는 소리였다. 이는 좋은 오케스트라가 가져야 하는 덕목인데 훌륭한 단원과 지휘자가 있어야만 가능한 모습일 것이다. 특히 상임 지휘자 ‘김영언’의 역할이 두드러져 보였다. 오케스트라가 흔들릴 때 다독이는 모습은 마치 학생들 앞에 선 선생님의 모습이었다. 오케스트라는 배우려는 학생, 지휘자는 경험 많은 선생님. 1부에서 협연자와 오케스트라를 소개하는 목소리에서 이 악단과 프로그램을 사랑하는 지휘자의 자부심도 느낄 수 있었다. 아마추어만 모인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것은 부담일 텐데 소리를 잘 만들어 내는 모습으로 그의 능력을 보여주고 있다.
프로 오케스트라와 아마추어 오케스트라의 차이는 ‘돈을 받고’ 하느냐 아니면 ‘내고’ 하느냐의 차이가 가장 클 것이다. 2001년에 창단된 서울시민교향악단(Seoul Civic Symphony Orchestra)은 단원들의 회비와 후원금으로 운영된다고 한다. 매주 목요일 저녁에 모여 연습하는 이 교향악단은 단원 모두 음악과는 상관없는 일을 하는 일반 시민이고. 물론 일부 파트는 객원 연주자가 있는 듯했지만 이렇게 느꼈다는 것은 교향악단이 수준 있다는 방증이 아닐까. 이들의 열정이 토요일 오후 따뜻한 음악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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