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초부터 정부 조직에서 일 하게 되었다. 공무원 신분이 아닌 파견 된 민간인 자격으로 일 하는 것이지만, 국가 행정의 패러다임을 충분히 목격하며 경험하고 있다. 가정과 직장 생활 등 사회생활에서는 국가와 민족을 위해 무엇인가를 한다는 거창함을 생각해 볼 기회가 없었지만, 이 조직에 와서는 국가와 이 사회를 위해서 누군가는 들여다 보고 만져야 되지 않을까? 라는 걱정이 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드라마 "정도전"에서 여말선초를 빗대어 이 시대에게 얘기한 '국가'와 '민생'이라는 화두가 나의 걱정을 호기심으로 자극하여 '정도전' 관련 도서를 찾게 되었다. 여러 평전과 소설이 있었지만 그 중 '올재'를 통해 발간된 '조선경국전'이 눈에 들어왔다. 이유는 '정도전'의 순수 저작물이며, 조선이라는 새 국가의 기초를 닦기 위한 행정 조직과 헌법 기능을 다룬 책이기에 더욱 관심이 가서 읽게 되었다. 물론 출판사의 착한 의도와 책값도 한 몫을 했다.
'조선경국전'의 내용은 크게 조선 개국의 철학적, 역사적 정통성을 부여한 부분과, 흔히 6조로 알려진 정부 조직 체계의 기초를 담은 부분으로 나뉜다.
앞부분에서는, 이성계가 새로운 나라의 왕이 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나열하면서 그의 선조들의 일화를 통해 역사적으로도 당위성이 있다고 미화하고 있으며, 국호를 '조선'으로 정하게 된 이유를 사대적 혹은 외교적 관점에서 서술하고 있다. 또한 왕세자를 세우는 방법으로 장자 아니면 지혜로운 아들로 세워야 된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지혜로워야 하는 이유로는 훌륭한 재상을 택할 수 있는 눈이 있어야 하고, 훌륭한 재상이 정치를 해야 나라가 발전한다는 정도전의 '재상 통치론'을 뒷받침하고 있다.
또한 군주는 항상 공부해야하며, 곁에 지혜로운 재상과 신하들을 두어야 한다고 하였는데, 철인군주(哲人君主)를 통해 조선을 이상국가로 건설하고자 한 정도전의 꿈이 드러나 있다.
뒷 부분은 6조(六曹)로 발전하게 된 6전(六典) 체제를 설명하며 구체적인 정책과 업무를 설명 하고 있다. 가장 큰 특징은 후에 이조로 개편 된 치전(治典)에서 재상이 나라를 다스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군권과 세금 관리를 치전의 수장인 재상에게 집중해야 한다고 했다.
모든 임금이 지혜로울 수 없으므로 지혜로운 이로 재상을 세우고 군권과 자금 관리 등 국가의 중요한 모든 것을 맡겨 다른 6전에 속한모든 신하들을 통해 다스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아마도 1인 재상에게 권력이 집중 된 이 부분이 이방원 등 반대파들을 크게 자극한 것으로 생각된다.
결론적으로 정도전 제거 후 이방원이 집권하게 되지만 역설적으로 '조선경국전'을 국가경영에 정식으로 적용하게 된다. 다만 재상권 중심의 권력을 왕권 중심의 권력 구조로 수정 한것 외에는 모든 '조선경국전"에서 설명한 조직과 구조를 조선이라는 새 국가의 건설에 적용하게 된다. 그 만큼 정도전의 연구와 이론은 새 나라를 건설하기 위한 많은 고민이 담긴 역작이 아니었나 생각 한다.
이 책의 내용은 더 이상 이 시대와 맞지는 않는다. 다만 읽으면서 느낀것은 헌(old) 국가에 대한 개조 혹은 개혁을 고민하다가 혁명까지 이르게 한, 오랜 고민의 나날과 그 만큼이나 많이 쌓였을 방대한 자료들에 대한 존경심이다. 물론 정도전 혼자만의 고민과 연구는 아니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개혁과 혁명에 대한 오랜 헌신을 통해 자연스럽게 새(new) 국가 창조의 콘트롤 타워로 자리잡은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지금 이 나라는 모든 곳에서 개조 혹은 개혁이 일어나야 된다고 외치고 있고, 그 외침에 공감하는 목소리 또한 높다. 그 주체가 누구이든 공허한 외침으로 그치면 안 될것이다. 또한 국가를 위해 봉사하는 자리에 있을수록 사명감까지는 아닐지라도 최소한의 책임감을 느껴야 될 것이고, 새로운 나라를 만들어 가는데에 걸림돌이 되지 않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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