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꼬마가 집을 나갔다

 

크게 아프고 나니 몸이 예전 같지 않다. 아빠와의 산책도 얌전하게 해야 하고 꼬마랑 놀아주는 것도 점점 힘들어 진다. 아닌 게 아니라 꼬마가 쑥쑥 크더니 이제 엄마는 물론 아빠보다도 크다. 얼굴에 털이 나더니 목소리도 예전 같지 않아서 제법 우렁차게 나를 불러 움찔할 때도 있다. 솔직히 가끔 그 목소리에 몸이 움직이곤 했다. 그래도 꼬마는 꼬마. 내가 너를 챙긴다.

 

온 가족들이 집에 함께 있는 시간도 좋지만, 나만 남아서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는 것도 좋다. 아무도 뭐라 하지 않는 자유가 좋아진 것이다. 내가 내킬 때 먹고, 마시고, 싼다. 그리고 눈여겨 두었던 화분이나 물건들에 입을 댄다. 너무 재미있다. 그리고 이것저것 하다 심심해지면 잠을 청한다. 잠에서 깰 무렵이면, 띠 띠 띠 띠, 띠로익! 가족들이 들어온다. 내 엉덩이가 자동으로 반응하며 현관으로 뛰어간다. 역시 가족은 함께 있을 때가 제일 좋다. 그 순간 내 엉덩이와 함께 도는 꼬리의 움직임이 너무 행복하다.

 

언제부턴가 가족들 목소리가 무거워졌다. 보통 엄마 아빠 둘이서 얘기 하는 것을 많이 봤지만, 그 즈음은 꼬마도 함께 했다.

 

기숙사에 가면······.” “학교 친구들과는······.”

 

무슨 말인지 꽤나 진지하게들 얘기 하곤 했고, 그 얼굴들이 심각하다가도 웃음을 짓곤 했다.

 

며칠 후, 세 식구가 함께 외출을 했다. 밥과 물을 평소보다 많이 주기에 좀 오래 걸리려나? 했다. 그래도 다시 돌아오니깐 뭐······. 평소처럼 먹고, 마시고, 싸고 저질렀다. 심심해지면 잤다. 잠에서 깰 때면 돌아올 테니까. 그래서 눈을 떴는데 아직 이다. 좀 오래 걸리네? 몇 번을 반복하니 그제야 문소리가 들렸다. 그래, 왔구나.

 

엉덩이를 마구 흔들며 현관으로 뛰어 갔는데 좀 이상하다. 꼬마가 없다. 밖에서 더 놀다 오나보다 했는데 엄마 아빠가 그냥 잠자리에 들어가려 했다. 이상해서 한참을 쳐다봤지만 방 불이 꺼졌다.

 

현관 앞에서 한참을 서 있었다. 안 들어 왔다.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대체 꼬마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걸까? 오래 전 아빠가 한참을 안 들어왔던 게 기억났다. 엄마 아빠 얼굴도 밝지는 않았다.

 

며칠 후 꼬마가 왔다. 커다란 짐을 들고 왔다. 눈물이 났다. 아니 오줌을 지렸다. 얼마나 기다렸는데······.

 

그 후로 꼬마는 집을 나갔다가 오랜만에 들어오곤 했다. 나도 그러려니 했다.

 

어느 날 집을 옮겼다. 살던 집보다 한참이나 좁아진 집이었다. 사람들의 공간도 좁아지고, 내 영역도 좁아졌다. 그러나 좁아진 만큼 몸들이 가까워 진 것 같아 좋았다. 이제는 엄마 아빠가 자는 얼굴도 볼 수 있고, 밥 준비하는 엄마 곁에 갈 수도 있다. 집이 좁다는 건 식구들이 가까워진다는 것이었다. 더 좋은 것은 아빠가 밤에 들어오면 산책을 시켜주는 것이었다. 집이 좁아서 답답했지만 산책이 있어서 견딜 만 했다. 비록 힘들어서 오래 걷지는 못하지만 매일 나갈 수 있어서 좋았다.

 

그런데 꼬마는 한참을 안 왔다. 그래도 오기는 왔다.

이제 병원 실습도 돌아야 하고 자주 못 와. 아마 명절 때 정도나?”

 

진짜 오랜만에 온 꼬마는 나를 위해 달콤한 걸 갖고 와선 어릴 때나 하던 개인기를 시키곤 했다. 기다려. . 먹어. 이 나이에 그걸 했다. 열심히 했더니 점프도 시킨다. 저항할 수 없는 그 냄새에 나도 모르게 무릎이 먼저 반응을 하였다. 그런데 그 무릎이 내게 화를 내었다. , 예전 같지 않네! 꼬마를 본 반가움과 달콤함의 유혹에 내 상태를 깜빡 잊은 것이다. 그래도 내가 이렇게 놀아주면 꼬마는 행복해 했고 그 얼굴을 보면 나도 모르게 무리를 할 수 밖에 없었다.

 

꼬마가 커가고, 엄마 아빠 얼굴이 변해 가듯 나도 늙어 갔다. 개의 1년은 사람의 7년이라 했던가? 진짜 그렇다면 나는 노인, 아니 노견이다. 그래도 내 할 일은 해야지. 나는 이 집의 둘째니까.

 

 

꼬마가 집에 오면 내가 챙겨주곤 하는 게 좋은지 항상 안아주며 자기 방에 데려가곤 했다. 그의 몸에서는 약 냄새가 났지만 싫지 않았다. 집에서는 잠만 잤고, 깨어나면 나를 배위에 올려놓거나 이런저런 장난을 걸어왔다. 이 나이에 이걸 하리?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오랜만에 오기도 했고 내 꼬마니까 열심히 놀아 주었다. 몸이 컸어도 나의 케어를 받아야 하는 내 꼬마니까.

 

그러다 며칠 머물다 떠나면 나는 한참을 앓곤 했다. 집에 한사람 더 있는 게 이리 피곤한 건지 몰랐다. 내가 앓을 때쯤이면 엄마는 밥 외에 국물에 고기를 잘게 찢어서 주곤 했다. 그래 난 먹을 자격 있어.

 

아들만 왔다 가면 비니가 몸살을 앓네. 아직도 강아지인줄 아나······.”

 

그래도 꼬마가 또 보고 싶다. 내 꼬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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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vagabun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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