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비니의 꿈
요즘 하루 종일 잠만 잔다. 움직이기가 힘들어져 산책도 안한지 꽤 되었다. 산책을 안 해서 다리에 힘이 없는지, 다리에 힘이 없어서 산책을 못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여튼 집에서 화장실 가기도 힘들다. 그래서 가는 도중에 실례를 하곤 한다. 그렇다고 야단맞지는 않지만 창피하지도 않다.
또, 잠이 온다.
나는 요새 잠이 좋다. 잠을 자면 건강하고 행복했던 시절이 되살아나니까. 그 꿈속에서 나는 여전히 사랑 받는 강아지다. 그리고 꿈에서라도 지난 견생을 추억하고 싶다.
개는 무엇일까? 내 삶은 어떻게 기억될까?
비니는 꿈을 꾼다.
개는 냄새다. 냄새로 모든 걸 알아본다.
아, 엄마. 그래, 가장 기억에 남는 냄새는 엄마의 젖 냄새다. 시큼 텁터름한 냄새였지만 달콤하게 목으로 넘어갔다. 지금 먹는 사료도 괜찮지만 그 좁은 방에서 맡고 먹은 엄마 젖이 최고다.
그리고 나를 ‘비니’라고 처음 불러준 그 누나의 냄새도 좋았다. 나를 내려다보며 쓰다듬어 줄 때의 그 손 냄새. 그러면 내가 어루핥아 주곤 했던 그 얼굴 냄새. 잊을 수 없다. 그렇게 기분 좋았던 냄새는 ······.
엄마 아빠 그리고 꼬마의 냄새도 좋았다. 엄마의 젖 냄새 이후에 처음으로 느낀 따뜻한 냄새였었지.
맞다. 아빠랑 산책 나가면 온갖 냄새를 맡을 수 있었지? 킁킁대며 아빠를 끌고 다닐 때가 좋았는데. 운 좋을 때면 맛있는 게 떨어져 있는 것도 알 수 있었고, 비둘기들의 흔적을 쫓아갈 수 있어 좋았다. 다른 친구들의 똥오줌 냄새도 좋았지만 내 존재를 알릴 수 있었던 내 똥오줌 냄새에 자부심을 느꼈던 시절이었다. 세상의 모든 냄새를 맡아 낼 수 있었는데.
지금도 이 방엔 그 냄새로 넘치겠지? 그런데 아무 냄새를 맡지 못하네.
아, 킁킁대고 싶은데 ······.
개는 소리다. 소리로 모든 걸 알아본다.
엄마와 함께 있을 때 들었던 검은손의 목소리는 진짜 무서웠다. 그 소리에 놀라 떨 때마다 엄마는 낮은 목소리로 달래주곤 했다. 그 소리의 높이와 소곤거림이 좋았다. 귀가 간지러웠으니까.
이집 저집 전전하다 엄마 아빠 그리고 꼬마와 함께 살게 되면서 듣게 된 목소리들의 화음을 잊지 못한다.
비니? 비니. 비니 비니!
엄마의 높은 목소리와 아빠의 중저음 그리고 꼬마의 외침. 제각각 동시에 부르는 목소리는 나를 흥분 시키는 마약이었다. 내 귀를 너무나 시원하게 울리며 간지럽게 했다. 그 소리들이 들리면 누구에게 먼저 달려갈지 방황하던 엉덩이가 생각난다. 그 목소리들에 행복한 나날이었다.
단지 목소리만 들려오지는 않았다. 그들의 행복과 기쁨이, 때로는 슬픔과 외로움이 함께 들려왔다. 나는 그 소리를 들을 수 있었고, 그때마다 그들을 어루핥아 주곤 했다. 그러면 또다시 들려오는 소리가 너무 따뜻했는데.
지금도 그 소리들이 울리겠지? 그런데 아무 소리를 못 듣네.
아, 귀가 간지러운데 ······.
꿈이구나.
잠에서 깨면 꿈에서처럼 맑지가 못하다. 맡지도, 듣지도 못하는 개 ······.
요즘 가족들이 나를 내려다보는 눈이 젖어있다. 내 눈은 뭔가 껴있는 듯 흐리고. 원래 잘 보지 못했지만. 내 시야에서 보이는 가족들의 눈길은 똑똑히 볼 수 있었다. 그 눈에서 모든 걸 읽어낼 수 있었다.
그런데 이제 그 눈길이 잘 보이지 않는다. 다만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것만 느낄 수 있다.
차라리 긴 꿈을 꾸고 싶구나.
개는 무엇으로 사는 걸까?
그것은 자기를 알아봐 주는 눈.
그 눈길 때문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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