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반도네온이 잠시 조명 받은 적이 있었다. 2011년 무한도전 서해안 가요제에서 ‘정재형’ ‘정형돈’ 팀이 “순정마초”를 통해 반도네온을 사용하였고, 방송 직후 연주자와 반도네온이 실시간 검색어 상위권을 장식하였다. 당시 아코디언과는 다른 모습과 개성 있는 소리로 대중의 눈과 귀를 자극 했고, 이국적인 강렬한 사운드로 인상 깊은 데뷔를 하게 되었다. 오랫동안 묻혀 있던 반도네온이라는 악기가 우리 곁에 다가 온 것이다.
반도네온은 탱고 동호인들이나 ‘요요마’의 ‘피아졸라’ 음반을 통해 알려져 왔지만, 실제 악기와 연주 모습이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진 것은 무한도전이 처음이었을 것이다. 이후 KBS “불후의 명곡”을 통해 간혹 소개 되었고, 이제는 많은 사람이 반도네온과 아코디언의 차이를 알게 되었을 것이다.
이렇듯 강렬하지만 감성 있는 모습으로 우리 곁에 다가 온 반도네온은 오랜 역사를 갖고 있지는 않지만,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지며 세계 곳곳에서 살아 왔다. 특히 머나먼 남아메리카 대륙 아르헨티나에서는 탱고와 함께 다시 태어났다. 그렇지만 이 악기는 19세기 중반 독일에서 탄생되었다. 다른 악기에 비하여 오랜 역사는 아니지만, 바람을 통해 소리를 만들어 내는 모든 악기들과는 멀거나 가까운 친척이라 할 수 있다. 크게는 파이프 오르간이 아주 먼 친척이라 할 수 있고, 우리에게 친숙한 멜로디언 혹은 멜로디카도 같은 원리에서 출발한 친척 악기이다.
특히 아코디언은 그 생김새와 연주 방식이 아주 비슷한 사촌 악기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건반으로 연주하는 아코디언과는 달리 단추를 눌러 연주하는 반도네온은, 그 구조의 다름뿐 아니라 소리의 색채와 악상 구현 방식에도 많은 차이가 있다. 반도네온의 가장 큰 특색은 날카롭게 끊어 연주하는 스타카토가 가능하고(유명한 ‘리베르탱고’처럼), 다양한 감성의 바이브레이션을 (상황에 따라 길게 혹은 짧게 떠는 등) 표현할 수 있다. 또한 각 단추를 누를 때와 뗄 때의 소리가 다름을 이용해 섬세한 연주가 가능하기 때문에 파트너와의 교감과 즉흥성이 중요한 탱고와 함께 성장해 온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여러 문헌에 의하면 19세기 중반 독일의 ‘하인리히 반트(Heinrich Band)’가 만들었다는, 혹은 이름을 지었다는 기록이 있다. 중요한 사실은 그의 이름을 따서 "반도네온(Bandoneon)"이 되었고, 악기 딜러였던 그의 직업을 활용하여 유럽 여러 지역으로 전파 되었다는 것이다. 종교음악에 쓰이길 바랐던 ‘반트’의 처음 바램과는 달리, 휴대의 용이함과 다른 악기들을 빛내 주는 멋진 소리로 인해, 민초들의 마음을 달래 주는 민속 혹은 세속 음악과 함께 자리 잡아 나갔다.
19세기 유럽은 시민혁명에 이어진 혼란과 격동의 시기였고, 민초들에게는 일용할 하루의 양식이 가장 큰 축복일 만큼 궁핍의 시절이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삶을 찾아 신대륙으로 건너가게 되었다. 특히 통일 국가 이루기 전의 이탈리아와 독일의 노동자들이 아르헨티나와 우루과이로 이민을 많이 갔는데, 이때 반도네온도 함께 배를 타고 대서양을 건너 가게 되었다.
고단한 삶의 짐들은 단촐 했을 것이다. 아마도 몇 장의 옷과 당장 필요한 살림도구, 그리고 먼 뱃길에서 먹을 식량 정도였을 것이다. 그 짐들 속에 반도네온이 있었다. 그 멀고먼 이민의 삶을 지탱 하기 위한 짐들과 생존하기 위해 새로운 세상을 찾아 가는 지친 마음 속에, 고향 마을의 모든 것을 담을 수 있는 노래와 악기들이 함께 한 것이다.
기록에 의하면 반도네온은 1870년대에 부에노스아이레스에 도착 했고, 1890년대부터 탱고 음악에 널리 쓰여졌다고 한다. 고단한 이민의 삶을 달래주는 것이 춤이었을 것이고, 그 춤과 함께한 것이 음악이었을 것이다.
구대륙에서 멀리 떨어진 신대륙이었기에, 여러 민족이 어우러지며 살아 가야 되는 열린 세상이었기에, 새로운 것이 태어날 수 밖에 그리고 전혀 다른 모습으로 진화해 갈 수 밖에 없는 환경이었을 것이다. 그 가운데 탱고가 태어나 그들의 생활 속에 자리를 잡았고, 댄서들의 감성과 서로의 교감을 잘 표현할 수 있는 최고의 악기로 반도네온이 자연스럽게 자리 잡았을 것이다.
이 악기를 만들고 유럽에 보급시킨 ‘반트’는 종교음악에 널리 쓰이길 바랬었겠지만, 역설적으로 가장 세속스런 몸짓을 표현 하는 도구로 쓰이게 되었다. 그러나 반도네온은, 그 머나먼 이민의 지루한 바닷길과, 신대륙 개척의 고된 삶을 함께 한 동반자였고, 후손들에게 그 눈물의 흔적과 땀내 나는 기억을 이어주는 전설이 되어가고 있다.
Astor Piazzolla "Milonga Del Angel" Yoyoma & Sexteto Canyenq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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