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사는 친구 A가 귀국했다. 일 년에 한 번 정도 한국에 오면 그가 잊지 않고 하는 일정이 있다. 남쪽 어느 도시의 교도소에 있는 다른 친구 B를 면회하는 것이다.
A가 주로 머무는 수도권에서 제법 먼 곳이라 하루를 오롯이 오가야 한다. 체류일정이 촉박한 그로서는 화상 접견을 이용할 수밖에 없다. 관련 시스템이 구비 된 두 교정시설을 화상으로 연결하여 면회하는 방식이다.
일반접견을 가도 두꺼운 유리 벽 너머로 모습을 보게 되고, 목소리도 스피커나 점점이 뚫린 틈 사이로 전해 듣기 때문에 답답하긴 마찬가지다. 오히려 화상 접견이 음성 전달이 잘 되는 것 같다. 게다가 할애된 시간도 15분이라, 10분인 일반접견보다 이용시간에서도 유리하다.
A는 귀국 일정을 잡으면 먼저 접견 일정을 상의하는데, 내가 미리 인터넷으로 예약해야 하기 때문이다. 공인인증서로 다양한 보안 인증을 거쳐야 하기에 해외에서는 불가능하다. 우리가 이용하고자 하는 시설은 송파에 있는 동부구치소 화상 접견실이다. 주로 강남에서 일정이 있어서 방문하기 편하고, 접견 후 다른 일정을 진행하기도 수월하다.
예약 타이밍을 놓치면 원하는 장소와 시간에 못 할 수도 있기에, 예약 창이 열리는 10일 전에 알람을 맞춰놓고 인터넷 교정본부 사이트에 접속해야 한다. 덕분에 어제 일정에 차질없이 A와 함께 화상 접견을 다녀왔다.
우리가 면회한 친구 B는 고등학교를 함께 다닌 오랜 친구로 벌써 몇 년째 수형 생활을 하고 있다. 나름 모범수로 방통대에서 중국어를 공부하고 있지만, 이 정부에서는 가석방 대상이 되지 못할 죄목을 갖고 있다.
B는 사회생활을 할 때 친구와 지인들이 많았다. 하는 일도 승승장구했기에 그가 참석하는 모임에는 언제나 친구들, 사회 선후배, 각종 지인으로 넘쳤다. 징역 산 지 5년째로 넘어가는 요즘 그에게 꾸준히 편지하거나 면회 오는 친구는 몇 남지 않은 듯하고. 그나마 일 관계나 이해관계 때문에 연락 오는 지인들이 몇 있다고 했다. 형기를 1년여 앞둔 요즘에는 후일을 도모하자는 연락도 간혹 있다고. B의 표현으로는 진짜 친구 몇 명과 이해관계가 얽힌 몇 명의 지인만 남았단다.
그 많았던 친구는 같은 시절, 같은 학교에 다닌 동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고, 오히려 이해로 묶인 관계가 계속 이어지는 거 같다고 했다. B의 무거운 입과 어딘가에 있을 비밀 파일이 필요한 사람들. 그들이 내는 마음의 소리를 들을 수는 없지만, 관계는 이어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출소한 B가 필요한 사람들도 마찬가지고.
모니터 너머 친구와 15분간 여러 대화를 나누며 아침에 본 장면이 떠올랐다. 전직 대통령이 차에 탄 채로 차고를 나와 통제된 도로를 지나 검찰청 포토라인에 서는 장면. 혹시 지지자들이 나와 있지 않을까 했던 예상은 우려였다. 태극기 대신 세련된 발성의 1인 시위자와 하이쿠 못지않게 압축한 문구가 쓰인 플래카드만 사욕에 사로잡힌 한때 대통령이었던 그를 배웅했다. 뉴스에서는 여러 측근 정치인들이 배웅했다 했지만, 이해관계로 묶인 그들의 이해와 관계만 보여줄 뿐이었다.
화상 너머의 B는 권력과 부를 가졌던 그가 부럽지 않다고 했다. 꾸준히 편지 보내주는 친구, 접견 오는 친구들이 있고, 비록 이해관계가 엮여 있지만 찾아주는 지인들이 있기 때문이라고. 전직 대통령은 끝까지 곁을 지켜줄 지인이나 측근들이 얼마나 있을까는 의문이라고 했다.
이해관계로 모인 사람들의 마지막을 보게 될 거 같다. 크게 기대하진 않지만, 예상과 다를 것 같지도 않다. 그가 지키고 싶었던 것은 무엇일까? 가치인가, 이익인가?
그들이 장악했던 방송에서 발표했던 모든 가치를 종교적으로 신봉한 그 착한 백성들은 이제 몇 없다. 잘못된 가치를 지키려고 저지르는 폐해를 우리는 뼈저리게 경험하고 있다. 차라리 이해관계로 묶인 게 깔끔하지 않았을까? 라는 일부의 바람은 이미 끊어진 막차를 밤새 기다리는 거와 같다. 이제 새벽 첫차를 기다려야 하는 순간이다.
이해보다 좁디좁은 이익관계로 뭉쳤던 저 더러움의 관계를 원치 않아도 보게 될 것이고, 머지않아 그 종착역에 다다른 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 악다구니 속에 배신이 배신을 낳는 이익으로 맺어진 관계가 향하는 종착역.
다가오는 종착역을 인정하지도, 내릴 준비도 하지 않는 전직 대통령에게 교도소에 있는 친구가 전하는 덕담 한마디가 있다.
혹독했던 겨울이 지난 것에 감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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