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벽두부터 탄천에는 전운이 감돌았다.
정자역에서 서울대병원 방향으로 가다보면 탄천변 양쪽 산책로를 이어주는 다리가 있다. 그 다리 근처에는 퇴적물이 쌓여 섬처럼 된 곳이 있는데 오리들과 왜가리 등 철새들이 즐겨 찾는다. 수초가 무성하여 벌레들이 살기 좋고, 섬 바닥은 무기질을 품은 진흙이라 지렁이 등 무척추 생물이 살기 때문일 것이다. 모두 물새들의 먹이다.
최근 몇 주 동안 상류에서 무슨 일이 있는지 물이 좀 빠져 그 섬 아래쪽에 작은 섬이 솟았다. 그런데 두 개의 섬 중 먼저 생긴 큰 섬에 까치들이 자리 잡고 있고, 오리들은 한 마리도 없는 것이다. 그 섬은 원래 오리들과 철새들이 터를 잡았던 곳이다. 대신 작은 섬 주위로 오리들이 많이 모여 있다. 보아하니 청둥오리를 비롯하여 흰뺨검둥오리, 쇠오리, 비오리 등이 큰 선단을 이루고 있고. 마치 까치에 빼앗겨 버린 큰 섬을 탈환하기로 한 듯, 그 선단은 큰 섬 쪽으로 이동을 한다.
[탄천에 흰뺭검둥오리, 청둥오리, 비오리 등 오리들이 연합 함대를 형성하고 있다]
숫자는 적지만 청둥오리 수컷들이 초록머리를 번쩍이며 앞장서고 있고, 중앙에는 흰뺨검둥오리들이 큰 무리를 이루어 따르고 있다. 그 뒤에는 비오리 몇 마리들과 덩치 작은 쇠오리들이 따르고···.
큰 무리가 선단처럼 함께 움직이니 장관이다. 사람들도 웅성거리며 무슨 일인가 한다. 이 기세에 눌렸는지 까치들이 섬을 두고 퇴각을 한다. 선두에 섰던 청둥오리 몇 마리가 상륙을 하더니 날갯짓과 함께 꽥! 꽥! 거린다.
그렇게 분쟁은 마무리 된 듯 보였다. 그러나 얼마 후 까치 대여섯 마리가 빠른 속도로 날아오더니 깍! 깍! 하며 거의 수직으로 내려앉는다. 청둥오리 등 오리 선단은 다시 섬을 두고 퇴각을 하고···. 얼마 후, 오리 선단들이 다시 들어오고······.
[오리들 전방의 섬을 향해 전진]
내가 보고 있는 한시간여동안 수차례를 반복 했다. 큰소리가 나거나 피 터지지는 않았지만 까치들과 오리들에게는 사활을 건 전쟁이었으리라. 그래도 그 모습들이 평화롭게 보이는 건 내 착각일까? 새들의 일상을 인간의 관점으로만 바라 본 것은 아닐까?
[오리들이 까치들에게 빼앗긴 선을 향해 전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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