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음(知音)/3월. 멀기에 낯선..

Oblivion, Astor Piazzolla

vagabundo 2014. 3. 16. 11:36

"엄마 찾아 삼만리"라는 만화 영화를 본 사람들은 "아르헨티나"를 저 바다 건너 삼만리만큼 

멀리 떨어져 있는 나라로 기억할 것이다.

 

주인공 소년은 그 먼 곳을 소식 끊긴 엄마를 찾아 떠났다.

아득한 바다산 설고 물길 선 그 곳을 왜?

 

뜸해지다 이내 끊겨 버린 소식에, 엄마로부터 잊혀진 것은 아닐까? 라는 불안?

혹은 이러다 엄마를 잊게 될지 모른다는 불안?

망각에 대한..

 



Richard Galliano 반도네온 & 탱고 앙상블 "Oblivion"


 

아르헨티나의 작곡가 피아졸라의 "Oblivion"을 듣다 보면 처연하면서도 아름다운 선율에 

폭 빠지게 된다.

그는 왜 이 곡에 '망각'이라는 이름을 붙였을까?

처절히 잊고픈 그 무엇인가로부터 영감을 얻어서 만들었을까?

그러나 사람들이 좋아하는 만큼 자주 연주되는 이 곡 자체가

피아졸라에게는 그 잊고픈 기억을 떠 올리게 만드는 트리거 포인트가 아니었을까?

 

망각은 상호 작용이다.

나와 대상간의 상호 작용..

 

그러나 나 혼자 잊어버린다고 그 대상 혹은 현상 조차 없어지는 것인가?

 

그 상대방 입장에서는 또 다른 현상과 기억으로 존재할 것이고,

또 다른 모습으로 확대 재생산 되어 나에게 되 돌아 올 수도 있다.

 

만약 그 대상이 다수의 그 무엇이라면?

그 무수한 다수의 기억 속에서 상상치 못할 다양한 모습으로 성장해 있을 것이다.

 

완벽한 망각은 존재하기 어려운 것이다.

상호간의 굳은 맹세가 아닌 다음에야..

 

피아졸라는 "Oblivion"을 본인이 가장 좋아하는 곡 중 하나라고 하였다.

그 만큼 다양한 악기 조합의 연주가 시도됨에서 알 수 있듯이, 

많은 연주자들에게 사랑받는 곡이다.

이렇듯 그의 탱고 음악은 댄스홀만이 아닌 콘서트 홀에서의 훌륭한 레퍼토리로도 자리 잡았고,

피아졸라는 이름은 탱고 음악과 동일시 되고 있다.

 

내 개인적인 취향이지만..

아르헨티나를 생각하면 탱고가 연상되고, 탱고를 연상하면 피아졸라가 떠 오른다.

또한 피아졸라가 떠 오르면 이 "Oblivion"을 찾게 된다.

 

여기서 또 다른 조합의 “Oblivion”을 들어 보자.



[Mario Stefano Pietrodarchi performs Astor Piazzolla Oblivion with Aram Gharabekian and the National Chamber Orchestra of Armenia.

April 19. 2008 at Aram Khachaturian Concert Hall in Yerevan, Armenia. Solo piano, Ella Melik-Husian.]

 

반도네온과 피아노, 현악기 편성을 위한 곡으로, 연주자와 지휘자간의 호흡이 두드러지는 

공연 실황 영상이다.

곡 시작을 피아노 솔로로 시작하는데, 이때 반도네온 연주자의 감정 몰입을 엿볼 수 있다.

이를 통해 뒤에 나올 본격적인 연주를 기대하게 만든다. 어쩌면 과도한 감정 표현이라 할 수도 있지만, “Oblivion”이 갖고 있는 처연한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악상 기호의 한 부분으로 봐도 될 듯 하다.


연주 전반에 걸쳐 온 몸을 써야 되는 반도네온의 특성을 잘 표현하고 있기도 하지만

지휘자와 오케스트라간의 호흡 또한 인상적일 만큼 뇌리에 남는다.

 

곡 전체에 걸친 현의 유려한 흐름과 하나 된 호흡이 훌륭한데

이는 전적으로 지휘자의 마법이라 생각될 만큼 숨 막힐 정도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 준다.

또한 그의 손짓과 표정에 완벽히 일치 된 연주는 한편의 아름다운 영화를 보는 듯 하다.

 

망각..


내가 잊는 것보다 더 두려운 것은 잊혀지는 것이다.

이것은 나의 선택 및 의지와 상관없이 당해지는 것..

싫다고 당당히 거부할 수 있는 권리가 아닌 것이다.

 

만화영화 주인공 소년은 아마도 멀리 돈 벌러 떠난 후 소식 끊긴 엄마가 그리웠겠지만,

실상은 엄마로부터 잊혀짐에 대한 원초적인 두려움이 생겨나지 않았을까?

 

그 두려움은 그리움과 공존한다.

그리움과 두려움 사이..

망각은 그 곳에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