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에서

중고책방에서

vagabundo 2017. 12. 15. 11:35

  사람들이 책을 좋아하는 방식은 다양하지 않을까? 책 읽는 것을 좋아하거나, 단순히 보는 것을(look, not read) 좋아하는 사람. 혹은 책 사는 것을 좋아하거나 책만 보면 훔치고 싶은 사람 등. 이런 사람들을 만족 시켜 주는 곳이 책방이다. ‘서점’보다는 ‘책방’이 책을 주인공으로 한 공간인 것 같아서 정겹다. 서점은 책을 파는 상점이라는 어감이 강하지만, 책방은 ‘책이 있는 공간’으로 편안하게 다가온다.

대형서점은 위에서 언급한 사람들 외에도 많은 사람들이 즐겨 찾게 되는 곳이다. 나도 근처를 지나가게 되면 굳이 용무가 없어도 들어가서 무슨 책이 새로 나왔나 보기도 하고 읽어 보기도 한다. 요즘에는 커다란 원목 테이블이 있어서 책을 읽는 분위기가 좋아 지기도 했다. 물론 빈자리가 없는 경우가 더 많지만.


  그러나 내가 주로 책을 사는 곳은 인터넷 서점이고, 책을 편하게 읽게 되는 곳은 중고책방이다. 그러고 보니 대형서점에서는 주로 책을 훑어보고 인터넷 서점에서 주문을 하곤 했다. 대형서점에서 뭔가 사게 되는 경우는 함께 있는 문구 매장에서 펜이나 노트를 사는 정도다.


  내게 대형서점은 뭔가 반짝이는 것과 소리 나는 것을 팔며 책도 있는 잡화점으로 다가온다. 반면에 중고책방은 모든 것이 책 중심이다. 심지어 함께 파는 굿즈도 책갈피, 책받침대, 책을 주제로 한 캔버스백 등 책이 그 중심에 있다. 나는 그런 분위기가 좋다. 더 좋은 것은 간혹 절판된 보물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근처에 갈 때 약속시간을 여유 있게 잡아 매장을 방문해서 메모해둔 책을 검색해보고 눈에 띄는 책을 읽거나 사기도 한다.


  어제도 강남의 한 중고책방을 들렀다. 마침 눈에 띈 몇 권을 들고 책을 읽을 수 있는 테이블로 가서 읽기 시작했다. 잠시 후 뽀시락 소리와 함께 맛있는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이건 마요네즈가 들어간 샌드위치 냄새인데?
마침 점심시간 언저리고 나는 아직 식사 전이어서 그 냄새가 나의 시장기를 자극했다. 누가 책방에서 빵을 먹나?


  대각선 맞은편을 보니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에 두꺼운 렌즈의 금속테 안경을 쓴 남자가 책을 읽으며 마요네즈 바른 식빵에 햄과 치즈가 들어간 샌드위치를 먹고 있었다. 뽀시락, 비닐소리는 났지만 씹는 소리는 내지 않았다. 오물오물 조용히 씹으며 눈은 책으로만 향하고 있었다.


  읽고 있던 책은 양장본에 500페이지가 넘어 보였다. 테이블에 펴 놓았기 때문에 제목은 안 보였으나 문학책으로 짐작되었다. 서점과 어울리지 않는 음식 냄새 때문에 테이블에 있던 사람들이 그를 쳐다보는 것을 나도 느꼈는데, 그는 책만 주시했다. 이윽고 다 먹더니 초코파이도 꺼내 먹었다.


  무척 시장했나 보다.
중고책방에서 두꺼운 책을 읽으며 배고픈 듯 샌드위치를 조용히 먹는 높은 돗수 안경을 낀 청년.


  무슨 사연인지 상상하지 않기로 했다. 필요한 책이 거기 있었고 배가 고팠고 남의 시선을 가리지 않을 배포가 있었을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몇 시간 후 볼 일을 마치고 골랐던 책을 사려고 다시 들렀을 때에도 그는 그 자리에 있었다. 책장이 많이 넘어간 듯 보였다.


  책도 읽고 빵도 먹었으니 시장하지는 않겠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