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문(雜文)

제주도 예능을 보는 단상

vagabundo 2018. 5. 1. 15:50

제주도를 배경으로 제작된 방송프로그램인 JTBC<효리네 민박2>tvN<숲속의 작은 집>이 인기를 끌고 있다. 두 프로그램은 대조적 콘셉트로 접근해서 서로 다른 두 삶의 모습을 엿보게 해주는 게 인기의 배경이다. 이슈를 반영하듯 두 프로그램을 비교한 칼럼도 나왔다. 칼럼니스트 김교석엔터미디어에 쓴 “‘효리네의 손님이 좋을까요? ‘숲속집체험이 나을까요?”라는 칼럼이다.

 

기사에서 두 프로그램의 콘셉트를 비교하며 독자에게 어떤 체험이 맞을지 생각하게 한다. 관계에 방점을 둔 <효리네 민박2(이하 효리네)>가 좋은지, 오프그리드의 슬로우라이프를 지향하는<숲속의 작은 집(이하 숲속 집)>가 좋은지를 물어본다. 여행을 떠나 다양한 사람을 만나 서로를 열어놓고 싶다면 효리네, 혼자 침잠하여 오로지 자연의 힘에 의지하고 싶다면 숲속 집을 권하고 있다.

 

상상만 해도 행복하다. 내가 누구인지, 무엇을 하며 사는지, 어떤 주제로 얘기를 하든지 다 이해하고 들어주는 민박집 주인 부부라니! 게다가 만난 적도 없고 앞으로도 만날 일 없을 다른 투숙객들과 자기를 다 내려놓고 지내는 그 안락함이라니! 당장 떠나고 싶다.



 

그런 떠들썩함이 싫다면 그냥 숲속 집으로 가면 된다. 포장도 되지 않은 길, 아니 밟는 곳이 길이 되는, 그래서 사륜구동을 타고 가야 하는 그런 곳. 그런 한적한 곳에 인스타에나 나올 법한 예쁜 집에 머문다니! 온갖 새소리와 제주도에만 있다고 주장한 큰오색딱따구리가 살고 순하디순한 개들이 모이는 그런 곳에서 지낼 수 있다니! 상상하지 않아도 행복해서 지금 당장 그곳에 있고 싶어진다.

 

여기 까지다. 아무리 행복해도 생각만 할 수 있고 상상만 할 수 있다. 우리 대부분은.

 

우리 일반인도 그런 곳에서 휴가를 보낼 수 있을까?

 

효리네게스트하우스를 닮았다. 주인과 스태프와 손님들이 어울리는, 제주도에 많은. 밤이면 모닥불 피우고 파티하는 그런 게스트하우스. 물론 모든 곳이 그렇지는 않지만, 뉴스에 나온 게스트하우스 관련 사건들 때문에 불안감이 남아 있는 그런 곳. 그렇지만 셀럽이 아닌 우리 대부분이 가게 되는 게스트하우스는 효리네와 다르다.

 

우리 일반인들이 주로 가는 게스트하우스에서는 주인과 손님으로, 손님과 손님으로 만나기 전까진 몰랐을 익명들을 같은 숙소에 묶는다는 인연 때문에 만나게 되고. 여행을 떠났다는 홀가분한 기분으로 서로를 대하게 된다. 그곳은 방송처럼 미리 신청을 받아 사연과 인적사항을 검토하고 인터뷰까지 치러 이 맞는 사람을 고를 수는 없다.



 

그렇다면 숲속 집같은 오두막은 있을까? 주변에 사람이 살지 않는 완벽한 오지, 깊은 숲과 계곡이 있어 새와 동물이 찾아오고 아기자기 예쁘기까지 한 그런 오두막. 오롯이 홀로 머물 수 있는 그런 곳. 진짜 있다면 가고 싶다.

 

리얼을 연기하는 리얼리티 프로그램

 

두 프로그램 모두 있는 그대로를 보여준다지만 방송이 보여주는 것은 가상의 세계고 가공된 체험이다. 그럼 예쁜 민박집과 오두막은 세트의 역할을 하는 건 아닐까? 실제 사는 집이지만, 방송에 나와도 손색없는 멋진 세트. 그렇다면 출연자는 실제 생활을 연기로 치환한 걸까? 주어진 상황에 충실한 연기로? 그 생활 혹은 연기에 맞춘 대본은 나중에 나온다. 편집이라는 후대본으로. 24시간 쭉 돌아가는 카메라지만 하루나 이틀 혹은 그 이상의 날들을 짧은 시간에 압축해 보여준다. 방송사가 의도하는 흐름으로 영상을 연출해서.

 

리얼리티 프로그램이라지만 리얼리티를 연기하는 잘 짜인 드라마이다. 민박집으로 설정한 세트에서 주인과 손님이라는 배역을 주고, 두 관계의 이상적인 모습을 보여주라는 가상의 대본대로 촬영하고 편집한 드라마. 오두막도 마찬가지. 주어진 세트를 잘 활용하고 어떻게 하면 카메라에 잘 나오는지 아는 배우들에게 미션의 탈을 쓴 디렉션과 연기지도를 하는 드라마.

 

리얼리티 예능은 자세한 대본 없이 장소와 상황에 따른 미션을 주고 출연진의 의식 흐름에 따라 흘러가는 프로그램이다. 물론 촬영 후 제작 의도에 맞춘 사후 대본대로 편집한다. 두 방송사가 기획한 의도와 다르다고 생각하겠지만, 두 제주 프로그램도 이런 리얼리티 프로그램의 연장이다. 실제 생활하는 곳을 세트로 치환하고 출연진들이 리얼을 연기하는 리얼리티 프로그램인 것이다. 자발적 고립을 그리는 다큐멘타리, 아예 민박을 방송 콘셉트라고 주장하지만, 영화 트루먼쇼를 언급하지 않더라도 그 를 이어받은 리얼리티 쇼일 뿐이다. 철저한 상업주의가 깔린.

 

효리네만 보더라도 모든 배경이 광고다. 굳이 상표 보이게 음료를 마신다든가 부부가 같은 브랜드의 사륜구동을 탄다든가 의도했든 하지 않았든 이슈가 된다. ‘유명연예인스태프가 묵은 숙소는 이미 널리 알려졌고, PPL이 아니라고 주장한 주방기기도 품절이다. 출연한 일반인 투숙객 일부는 셀럽대우를 받는다. 방송이 일반인을 잘 띄웠거나 방송을 잘 활용한 새로운 셀럽이 탄생한 것이다.

 

대리 만족? 엿보기로 만족할 수밖에

 

그런 방송 논리를 잘 아는 시청자들도 심하게 몰입한다. 현실과 다른 판타지라면서 자기는 저런 체험을 못 할 거라면서도 재미있게 본다. 그것이 대리만족이 주는 만족인가 아니면 포기인가? 이번 생에서는 결코 되지 못할 드라마나 영화의 주인공처럼 리얼리티 프로그램도 그렇게 대한다. 어차피 직접은 주인공은 못 되니 그 삶을 엿보기나 하자면서.

 

제주도를 배경으로 한 두 프로그램은 일반인들의 엿보고 마는 현실을 건드린다. 대리 만족으로 포장되었지만 엿보는 것으로 그쳐야 하는 현실이 담겨있다. 엿본다는 건 욕망이고 호기심이다. 갖지도 못하고 만지지도 못하는 욕망이라서, 내 이야기가 아니고 내게 벌어질 일도 아녀서 호기심을 가지고 엿본다. 저 세계에서는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그렇지만 엿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하는 현실이 그들에게 있다. 일반인이라는 현실. 일반인들은 꿈도 못 꿀 분위기와 상황이 벌어지는 장소가 연예인들을 더욱 특별한 사람으로 만들어 준다. 그래서 일반인과 구별해서 본인들을 자칭하는가? ‘스타혹은 셀럽이라고? 국어사전에 일반인의 정의(定義)를 추가해야 한다면 연예인이 연예인 아닌 사람들을 부를 때 쓰는 단어라고 추가해야 할 것이다.

 

우리 일반인들은 그런 가상의 리얼리티를 엿보며 부러움을 감추고 위로를 받았다고, 힐링했다고 위안 삼는다. 그들은 우리와 달리 빛나는 스타이니까. 우린 그냥 여기까지만. 그래도 허한 기분이 남는다면? 지갑이 허용하는 한도의 사치를 소비하며 힐링위로포스팅을 하고, ‘좋아요에 만족하거나 절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