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12월
내게 12월을 색깔로 표현하라고 하면 빨간색이라고 답을 할 것이다. 추운 겨울과 잘 어울리는 따뜻한 색이 여러 개 있겠지만, 나는 빨간색이 가장 따뜻하다고 생각한다. 나 어릴 적 기억나는 첫 겨울옷이 빨간색 오버코트였기 때문일 것이다.
연말은 크리스마스와 함께 온다. 거리에 빨간색이 많아지면 종교를 막론하고 누구나 기다리는 성탄절이 코앞으로 다가온 것이다. 크리스마스트리를 장식하는 빨간색들, 강렬한 빨간색의 포인세티아, 루돌프의 빨간 코, 산타할아버지의 빨간 뚱뚱한 옷 ······.
그런데 크리스마스 시즌이 아니어도, 다른 계절이어도 빨간 색을 입는 사람들이 있다. 서울 등 대도시의 전철역과 주요 도로에서 빨간 조끼를 입고 '빅이슈'를 파는 남자들이 그들이다. 관심 있는 사람들은 알겠지만 그들의 자립기반 확보를 위해 모 사회적기업이 발행하는 격주간지 잡지로, 판매금액의 50% 정도가 판매원의 수익이라고 한다.
그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디에선가에서, 지난여름에도 입었을 빨간 조끼를 두터운 외투 위에 껴입고 행인들에게 '빅이슈'를 외치고 있을 것이다. 내가 다니는 회사 근처 전철역에도 얼굴에 화상 흉터가 진 아저씨가 판매원으로 있다. 그는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허리를 숙여 인사를 하며 "빅이슈 있습니다. '러빙 빈센트' 특집입니다"를 외친다. 표지모델이 바뀌거나 특집 내용을 외치며 행인들에게 관심을 얻고자 한다. 나도 매번은 아니지만 표지나 특집에 관심이 가면 사고는 한다. '무민', '러빙 빈센트', '문근영' ······.
그런데 12월이 되자 빨간 옷을 입은 다른 사람들이 나타났다. '구세군 자선냄비' ······. 모 기업에서 후원한 '빨간 패딩'을 입고 느릿 느릿 종을 울리며 모금을 한다.
빅이슈 아저씨는 역으로 올라가는 계단 밖에서,
구세군 자선냄비는 역으로 올라간 계단 위에서.
종소리와 목소리. 그 재질의 차이만큼이나 소리 크기와 파동이 비교가 안 된다. 어제 퇴근할때 보니 빅이슈 아저씨의 공손함이 비장할 정도였고, 목소리는 힘이 잔뜩 들어가다 못해 잠겨 있었다. 그래도 자선냄비의 종소리가 그 목소리를 삼키는 듯 했다.
이번 12월의 빨간색은 잔인하게 느껴진다.
제대로 쓰이기를 바랄 뿐.